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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백수린 작가의 <<친애하고, 친애하는>>

by 하늘너머 2020. 10. 7.

 

 

 

 

“봐라, 인아야. 세상엔 다른 것보다 더 쉽게 부서지는 것도 있어.

 하지만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저, 녹두처럼 끈기가 없어서 잘 부서지는 걸 다룰 땐 이렇게, 이렇게 귀중한 것을 만지듯이 다독거리며 부쳐주기만 하면 돼.”

밖에선 비가 왔고, 신문지를 펼쳐놓고 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많은 빈대떡을 부치던 할머니는 할머니 옆에 강아지처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나에게 세상 중요한 비밀을 알려주는 사람처럼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불안한 사람은 뭐든 확실한 것이 필요하잖아. 그게 미신이든, 음모론이든, 돈이든.”

 

 

  이야기를 써본 뒤로 소설을 읽으며 작가가 어떻게 썼는지, 이런 묘사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나라면 이렇게 쓸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읽게 된다. 소설은 마치 에세이처럼 기억을 복기하는 느낌으로 진행된다. 얼핏 묘사가 단순해 보이면서도 문학성은 잃지 않는다고 느꼈다. 작가가 밝혔듯 자전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3대에 걸친 개인, 그리고 사회의 역사, 그 안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인데, 화자의 엄마에 대한 묘사가 딱딱했다. 읽으면서 어쩌면 조금은 더 다정한 면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일관적으로 일에 열중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화자가 엄마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바라는 대목에선 같은 마음으로 한 마디만 해주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다양한 엄마의 모습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이런 엄마의 모습은 사실 반가운 것이었다.

 

  먼저 소설을 다 읽은 지인이 결말이 조금 아쉬울 수 있다고 했는데 바로 어떤 부분인지 알 수 있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교수로서 바쁜 삶을 사는 엄마와 대비되는 지점이 있으려면 화자의 이른 결혼이 가능하겠고, 엄마의 기대에 항상 눌려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켜 학문의 길을 걷거나 번듯한 직업을 가진다거나 하는 것이 화자의 독립적인 결정을 떨어뜨리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른 결혼을 하는 것이 무언가 필수불가결하고 독립성이 충족되는 지점인가 하면 그것은 또 아닌 듯하다. 임신으로 인한 계획되지 않은 이른 결혼이 때론 어떤 슬픔을 가져오는지를 너무 많이 들었고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반드시 슬픔만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필자와 화자의 엄마, 할머니는 비슷하지 않지만 자연히 할머니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성격을 닮아서가 아니라 그 따뜻함과 인간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유한함 때문일 것이다. 울적해지고, 서글프다가 결국 눈물을 떨어뜨리게 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 책을 읽다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으니, 소소해 보이지만 글을 읽는다고 해서 행동이 바뀌는 경우가 딱히 많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좋은 책 읽기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게 할머니는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은 존재다. 억지로든, 힘을 나게 하려는 할머니만의 전략이든 어쨌거나 무한한 애정과 믿음을 내게 주시는 분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반가움을 온몸으로 표현할 줄 아는, 말 그대로 뭘 해도 사랑을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게 어떻게 힘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적으면서도 자꾸만 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최근 들어 할머니가 자주 생각나고 보고 싶다. 코로나로 인해 못 뵌 지 9개월쯤 되었다는 점도 그렇겠지만, 끝이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 탓이기도 한 것 같다. 고등학교 때 한 선생님이 집에 가서 부모님께 잘 하라며 그렇게 한 지붕에서 같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요지의 말을 듣고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정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그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기숙사에 살면서 가족들과는 멀어졌고 할머니와는 가까워졌다. 할머니와 같이 2년 이상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참 말을 안 듣고 도움이 안 되는 손녀였는데 그 때 좀 잘할걸 하는 후회가 항상 들다가도 돌아가도 잘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토록 힘들다고 생각했던 직장 생활에도 끝은 있었고 직장 생활을 끝내면서도 지금 끝난다는 걸 미리 알았으면 덜 힘들었을까, 왜 나는 그렇게 평생 다닐 것처럼 힘들어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집에서 대학교로, 대학을 졸업하곤 직장 근처로, 그리고 다시 집으로 옮겨 다니며 지금 이 생활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몸소 체험했다. 할머니가 그립다. 무슨 약을 드시는지, 어디가 아픈지, 할아버지가 뭘 주문하는지 멀리 있는 자식보다도 더 자세히 알던 그 때로 가고 싶다.

 

 

 

추천 : 엄마와 할머니와 여성에 대해 생각하고픈 사람들에게. 술술 읽히는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