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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H마트에서 울다 - 미셸 자우너

by 하늘너머 2022. 12. 16.

<한 사람의 추억을 넘어 세상의 감동으로>

 

 

 아직 겪지 않은 이들에겐 두려운 상상이고 이미 겪은 이들에겐 가슴 아픈 기억이다. 미셸 자우너는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개인적인 역사의 특수성을 통해 풀어냄으로써 특별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책의 페이지가 편하게 넘어가지 않는 것도 상실에 대해 직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기억을 글에 잡아두려는 듯 저자의 문장에서는 절박함까지 느껴진다. 한국인이었던 엄마를 추억하는 일에는 필연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해석이 뒤따른다. 미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내국인과 외국인의 경계에서 한국을 바라보는데, 한국이라는 나라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의 독자를 대상으로 쓰인 글이라 오히려 한국 독자에게는 익숙한 문화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한국인에게 밥은 각별하다. 대부분 밥을 잘 챙겨 먹는 오늘날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 먹었냐는 인사를 안부로 묻고 헤어질 때는 밥 먹자는 약속을 곧잘 한다. 소중한 사람의 존재처럼, 중요한 것은 그만큼 당연시되기도 한다. 너무나 보통의 것이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주로 먹는 음식과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 이토록 상세하게 묘사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 음식에 깔린 정서를 삶으로 이해하고 있는 저자가 만나 한국 독자 역시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가족은 다정하고 언제든 힘이 되주는 모습으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많은 날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랑하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 얼굴로 존재할 수 있는지 알게 되며, 특히 교육열과 고집스러운 사랑의 방식에 있어서는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 다양한 면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고 뒤집어보고 들추어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글자 하나하나에 배어있다. 엄마는 직업을 가지지 않은 채 가정에 온전히 몰입하지만, 딸의 눈에는 스스로를 위한 시간과 노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가사 노동을 성취라고 부르기 어려운 일로 치부하기도 한다. 가사 노동의 가치를 외부적, 내부적으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 가치, 즉 돈으로 환산하는 일이 지금 당장 불가능하다면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텐데 쉽지 않다. 저자는 엄마를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며 '엄마의 예술은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고동치는 사랑이었고, 노래 한 곡 책 한 권만큼이나 이 세상에 기여하는 일, 기억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이 책은 성장기이기도 하고 성공 스토리라고도 볼 수 있다. 유년기부터 삶에 대해 서술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오래 이어온 음악 생활의 성공 역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엄마가 안정적인 삶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반대의 것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그래서 엄마의 죽음 뒤에 이룬 성공에 마음 아파했을 것이다. 인생은 가끔 더 영화보다 허구 같을 때가 있다. 블로그에 적은 글을 책으로 묶어 출판하게 되었다고 한다. 엄마에 대한 글을 쓰는 시간이 고통이자 치유의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한 사람의 기억에서 점점 바래져갔을 기억이 세상에 꺼내어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그 과정에서 저자도 힘을 얻었기를 바라본다.